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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바흐찐이 말한 ‘대화’

Part. 2 바흐찐이 말한 ‘대화’ | The social media and dialogue | Scoop.it

Bakhtin의 대화의 의미

 

Bakhtin (1999)은 기호의 인지의 전제로서 인지자 각각이 고유의 시점을 갖고, 그 시점으로부터 기호를 적극적으로 의미 지워간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개개의 인지자 각각의 시점으로부터 해석된 기호의 의미는 서로간에 다른 것이고,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즉 Bakhtin의 분석은 다른 누구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이 점유할 수 있는"유일무이"의 장소로부터 인간의 인지가 진행된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나의 바깥에 있고 나와 마주하고 있는 인물의 전체를 내가 관찰하는 경우에, 실제로 체험되는 나와 그의 구체적인 시야는 일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떠한 순간에도 그리고 내가 관찰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인물이 어떠한 위치에 있더라도, 아무리 가까이 나의 옆에 있어도 나의 바깥에 있어서 나와 마주하고 있는 그 위치로부터는 그 자신이 볼 수 없는 무엇인가를 나는 늘 보고 알 수 있다. 물론 내가 보지 못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그 또한 보고 있다…..우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을 때 우리의 눈동자에는 두 가지 다른 세계가 비치고 있다"(Bakhtin, 1999, p. 145)

 

Bakhtin의 대화개념은 갈등상황(혹은 asymmetry 상황)으로부터 그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즉 갈등 속에서"나"는 타자가 규정한 해석을"나"의 해석에 넣어서(Park 註:나름대로 상황정의를 하여) 동시에 자신의 해석에 기초한 새로운 의미로 둔갑시켜서 타자에게 돌려 준다. 또한 이러한 "나"로부터의 해석을 돌려 받은 타자도"나"와 똑같이 자기 나름의 해석을 수행하는 셈이기 때문에 이 의미를 돌려주고 돌려 받는 행위는 양자가 접촉을 종료할 때 까지 계속되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주고 받음은 투쟁적인 성질을 띠기까지 한다(Clark & Holquist, 1984) Bakhtin은 이러한 해석활동을 통한 타자와의 접촉과정을 대화(Dialogue)로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타자(양육자)에 의한 말의 해석을 통해서 "나" 자신의 말의 해석을 수행하기 시작한다(Clark & Holquist, 1984). 그 의미에서는 "나"라고 하는 것은 타자로부터의 해석을 인식하는 것에 의해서 비로소 성립하는 鏡像(경상예컨대 Cooley의 거울자아)이고 타자와의 대화로부터 분리된"나"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가 타자와 다른"유일무이한"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는 것은 동시적으로, "나"와 타자가 마주보고, 상호의 해석을 교환하는=대화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Clark & Holquist (1984)는 이러한 대화에 있어서 "나"의 위치를 점유하는 것이 Bakhtin이 말하는 [전유-appropriation]라고 규정하고 있다.

"언어 속의 언어는 반은 타자의 언어이다. 그것이 자신의 언어가 되는 것은 화자가 언어 속에 자신의 지향과 표정 그리고 accent를 심어서, 언어를 지배하고 언어를 자기의 의미와 표현의 지향성에 흡수할 때 이다. 이 appropriation(전유 or 수탈)의 순간까지 언어는 중성적이고 비인격적인 언어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왜냐하면 화자는 언어를 사전 속에서 선택해 갖고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타자의 혀 위에 타자의 맥락 속에 타자의 지향(intention)에 봉사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Appropriation의 과정은 멀고도 험하다(Park 註)

 

순수하게 순도 100%의 “자신”의 말은 존재할 수 없다. “자신”의 말은 타자의 말을 타자의 혀로부터 빼앗아서, 솔직한 자기의 지향(intention) 속에 심으려고 투쟁하는 과정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Bakhtin은 주장한다. 즉 기호의 의미라고 하는 것은 사전과 특정한 권위자가 규정하는 단일하고 정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나”와 “나”이외의 타자와의 대화 속에서 상호 교섭, 전유되어 가는 다원적이고 역동적인 것이다.

 

Bakhtin은 이러한 대화에 참가하고, appropriation을 계속해서 수행하는 것을“진정한 이해”라고 정의하고 있다.

“타자의 언표를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자신을 그것과 관계 있도록 방향 지워서 그 언표를 있어야 할 문맥 속에 그것을 위한 적당한 장소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진정한 이해도 그 본성은 대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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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Comment :

윤석진 : 문학 이론가. 문예이론, 윤리학, 언어철학 등 사회학이 아닌 분야의 학자를 배운다는게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막상 수업시간에 대화론을 배우면서 SNS에 대화론 딱딱 들어맞는걸 보니 놀라웠어!

 

전하연 : 저두요! 물론 거의 모든 인문학분야에서도 주목받고 있지만, 특히 오늘날 SNS에 정말 잘 들어맞아요! 바흐친에 의하면 인간은 대화적 존재에요. 따라서 대화속의 자신을 발견하면서 존재감을 느끼고, 대화 그 자체가 목적으로써 존재하는 것이죠. 이것은 스마트폰-소셜미디어가 나오면서 우리가 잠결에도 폰을 만지며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 대화가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있는, '대화의 비종결성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윤석진 : 그치ㅋㅋㅋ SNS뿐 아니라 공중대화의 전면에 적용할 수 있을것같아 상당히 포괄적이더라구

 

최현희 : 바흐찐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차이'와 그 '차이의 인정과 포용'이 밑바탕 돼있는 것 같아요! '차이'가 대화의 원동력이라는 생각도 다시 한 번 하게 되네요. 이야기를 하고있지만, 모두 한 가지의 의견만 갖고 '맞아맞아, 나도 그래, 나도 똑같아' 식이라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이러한 차이의 표현과, 또 차이의 포용이 가장 탁월한 부분이 바로 SNS가 아닐까 싶어요.

 

최현희 : 우리의 모습만 봐도, 오프라인상에서는 아무말도 못하고있다가 SNS상에서 온라인 토론을 한 번 벌이면 열띤 토론을 하잖아요? 실시간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견에 대한 합의점, 또는 논쟁, 즉 공중대화를 하기에 적합해요!

 

전하연 : 맞아~ㅎㅎ 오프라인에서 표현을 못하는 것도 온라인에서는 잘 표현할 수 있더라구. 바흐찐의 이론은 특히나 정말로 sns에 잘 들어맞는 거 같아, 실시간 토론~! ㅋ.ㅋ

 

윤석진 : 근데 벌써 새벽 1신데 우리 대화는 언제 종결되는걸까...ㅋㅋㅋ 다들 어서 자고 내일 더 토론하자

 

전하연 : 이게 바로 대화의 비종결성이죠.. 이러고 잠들어도 내일 눈 뜨는순간 폰을 만지며 대화는 이어나가죠 ^*^

박화연 : 현희말에 공감! 난 이 자료에서 특히 '차이 있는 것들의 동시적 현존'이 가장 와닿네! 바흐찐에 대해 공부할수록 타자성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SNS가 정말 적합하단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 나랑 너는 타자니까 동시에 존재한다면 다른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고, 우린 동시에 존재하니까 그게 대화가 될 수 밖에 없지! 참 요즘 SNS에 비춰본다면 놀라울만한 이론인 것 같애!

 

안혜진 : 저는 다성성에 관심이 갑니다. 바흐찐이 문학이론가였다고 들었는데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가지고 대화주의를 연구했다는 점이 놀랍네요. 도스토옙스키는 캐릭터를 벙어리 노예로 만드는게 아니라 자유롭고 창조자와 나란히 설 수 있게 만든다고 하죠. 그럴려면 엄청난 노력과 능력이 있어야 할듯 싶네요! 여기서는 서로 다른 다수의 관점, 목소리가 공존하는 상태로 표현했네요. 캐릭터를 하라는대로 하는 노예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때로는 반역도 한다면 다수의 관점이 공존하는 상태겠죠ㅎㅎ

 

손지완 : 대화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 sns의 발전은 정말 반갑지. 그런데 현희말처럼 오프라인상에선 아무 말 못하다가 온라인상에서 열띤 토론을 한다.. 이 점이 왜이렇게 씁쓸하지 ㅠ 본래 대화는 서로 마주 대하며 이야기 하는 것인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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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youngmin's comment, May 21, 2012 8:55 AM
원문 링크가 끊어져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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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1-1 미하일 바흐찐의 이론으로 분석한 오늘날 공중대화 : 타자성

Part. 4-1-1 미하일 바흐찐의 이론으로 분석한 오늘날 공중대화 : 타자성 | The social media and dialogue | Scoop.it

그저 덮을 수밖에 없는 타자

 

‎"나의 유일성과 대체 불가능성을 가르쳐주는 타자"

바흐친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그가 라블레Francois Rabelais, 1494?~1553와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1821~1881의 애독자였다는 사실일 겁니다. 바흐친은 르네상스 시절을 풍미했던 라블레의 소설들, 특히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이야기La Vie Inestimable du Grand Gargantua, Pere de Pantagruel》를 통해서 '카니발carnival'이란 개념의 중요성을 확인합니다. 이어서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특히 《지하생활자의 수기Zapiski iz podpolya》를 통해 대화dialoue와 다성성polyphony의 논리를 정교화합니다. 카니발, 대화 혹은 다성성의 논리 이면에는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를 포착하려는 그의 노력이 숨어 있습니다.

 

바흐친이 카니발을 중시하는 이유는 카니발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행위자인 동시에 관객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카니발에는 외부가 없는 셈입니다. 카니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주체인 동시에 동시에 객체이기 때문입니다. 수동적인 관객, 즉 객체로만 머물면서 대중문화를 소비하고 있는 우리와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지요.

 

주체이면서 객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내가 타자에게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경우 우리는 주체가 되고, 반대로 타자가 능동적으로 활동하게 되면 우리는 객체가 됩니다. 카니발의 춤을 생각해보세요. 내가 춤을 리드하는 순간이 있고, 타자가 나를 리드하는 순간도 있을 겁니다. 이 경우 나와 타자는 역동적으로 어느 순간 주체였다가 다른 순간 객체가 되는 카멜레온과 같습니다. 바흐친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대화입니다. 두 사람dia의 이야기logos가 역동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바로 대화니까 말입니다. 타자와 춤을 추고 나면,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춤에도 나와 타자의 흔적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통일된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모든 이야기의 이면에는 다양한poly 목소리들phone의 역동적인 작용이 전제되어 있는 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흐친의 다성성 개념이지요.

 

타자가 없다면 카니발을 달뜨게 만드는 춤도, 그리고 대화로 엮어지는 이야기도 불가능한 법입니다. 어쩌면 바흐친이 타자의 문제에 골몰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자를 해명하지 않는다면 카니발, 대화, 다성성의 논리도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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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Comment :

윤석진 : '내가 볼 수 없는 나와 내 뒤위 모습들을 너무나 간단히 보는 타자' 내 머리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 주는 친구의 모습같네~!

 

손지완 : 주체이면서 객체가 된다~! 뭔가 멋진 말 같다ㅎㅎ

 

전하연 : 정말 의사소통에서 ‘타자성’은 기본인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상’을 두고,(독백일지라도 대상은 있고) 이야기가 성립될 수 있는 ‘관계성’ 아래 가능하니까요^*^

 

박화연 : 내가 생각하기에, 바흐찐의 이론에서 타자성은 기본으로 깔려있는 것 같아서 주목하고 싶었어.ㅎㅎ 이 글에서 볼 수 있듯이 타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대화도 축제(카니발)도 있을 수 없으니..ㅎㅎ

 

전하연 : 맞아맞아, 타자는 기본적인 전제인 것 같아!

 

안혜진 :‎'주체는 타자의 입장에 설 수 없고, 또한 내 자신이 타자의 타자이다.' 단순한 이론이지만, 명쾌하네요! 결국 혼자서는 대화할수 없고 또 내가 있어야 남도 대화할 수 있다는 뜻이겠죠.

 

최현희 : 응, 타자가 없다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 우리 생활에서도 돌아보면 하연이 말대로 타자는 빠졌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타자에 대한 개념과 그 존재감을 다시한 번 깨닫게 해주는 글이당.

 

손지완 : 바흐찐은 독백마저 타자가 존재한다고 했으니..대화에 있어 타자의 존재는 절대적인 것 같아

 

윤석진 : 우리가 늘 하는 토론과 발표 수업도 모두 타자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생각해 ㅎㅎㅎ

 

손지완 : 그렇네. 같이 의견을 나눌 상대가 있으니 토론도 하고 들어줄 상대방이 있으니 발표도하고.. 평소엔 이런거에 아무 생각 없었는데 타자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전하연 : 타자가 있어야 대화가 이어지고 그 대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 사람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게 본성이라고 했으니까.

최현희 : 토론과 발표수업에는 타자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행동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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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2 미하일 바흐찐의 이론으로 분석한 오늘날 공중대화 : 함축성

Part. 4-2 미하일 바흐찐의 이론으로 분석한 오늘날 공중대화 : 함축성 | The social media and dialogue | Scoop.it

SNS와 선거

 

최근 들어 SNS는 영향력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을 퍼 날라 대안 여론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기능 때문에 선거의 판도를 좌우하는 대안 미디어로 떠오르고 있다. SNS의 이러한 기능은 지난 2008년 미국 대선에서부터 확인되기 시작했다. 당시 오프라인에서 열세였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SNS에서 팔로우어(follower)들이 그의 정치적 가치를 퍼 날라 확산시킨 덕분에 지지도는 물론, 힐러리 클린턴보다 많은 정치적 자금마저 모을 수 있었다. 우리도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SNS의 힘을 절감했다. 보궐선거에서도 스마트폰을 이용한 선거독려 메시지의 퍼나르기(트윗) 수가 승부를 가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선거 당일 트위터를 통한 투표 독려가 활발할수록 투표율도 올라갔고, 트위터에서 후보자 언급 회수의 차이가 각 후보의 득표율과 비슷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선거기간 동안 트위터리안(twitterian: 트위터 사용자) 사이에 나타난 후보에 대한 선호 차이가 투표로 실제 반영된 결과다. 그렇다면, SNS가 선거에 실제 어떻게 영향을 끼칠까?

첫째, 주류 미디어들의 권력성과 편향성에 식상한 뉴스 소비자들이 사적 의견을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뉴스로 만들어 유포하게 되면서 대안여론을 형성한다.
둘째, SNS 상의 뉴스는 사용자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퍼 나르면서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셋째, SNS에서 사적 의견이 뉴스가 되는 여론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사용자들이 올린 글을 퍼나르는 가운데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시하는 집단, 즉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이루어진다.

 

넷째, SNS에서 정보의 양 증대는 정보의 콘텐츠 차이를 확대시키면서 여론의 향방을 좌우하게 된다. 즉, 트위터에서 언급량 여하가 특정 여론(과 후보)의 지지 정도를 자동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언급되는 정보의 콘텐츠 유형 차이에 의해 등락이 이루어진다.

 

다섯째, SNS의 사용자가 의견을 팔로우어들에게 보내거나 전달하면 주류 매체들의 익명화된 정보에 비해 수용자에게 훨씬 높은 소구력이 작용해 집단화된 행동을 더 쉽게 유발한다.

 

선거에 대한 SNS의 영향력은 앞으로 일정 기간 계속 될 것 같다. 트위터 사용자는 6.2 지방선거 때 100만명 남짓했지만, 4.27 재보선 때 250만명을 넘어 10.26선거 때엔 400만명에 이르렀으며, 2012년에는 1000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혹자는 SNS가 정당 역할을 대신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그러나 소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여론을 주도함으로써 정책 논의보다 군중 심리에 휩싸이거나 무분별한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등의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SNS 사용세대와 비사용 세대 간의 분리는 여론의 분절과 갈등을 낳는 새로운 사회적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SNS 상의 공론이 건강하기 위해선 합리적인 게임규칙의 적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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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Comment :

최현희 : 다성성, 이어성, 비종결성 특징 생각하다보니까
다른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끝없이 이야기 한다는 거에 초점 맞추다 보니까 토론장이나 공론장으로써 SNS가 생각나서 연결지어봤는데 이거도 맞낭???

 

윤석진 : 트윗터는 유명인사 몇몇의 목소리만 크게 들리고 팔로워가 작은 사람들은 무시되기 쉽지만 끝없이 갱신되는 타임라인을 보면 비종결성하난 끝내주는거 같아

 

전하연 : 정말이지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끊임없는 대화^.^ 의견들이 끊기질 않죠.

 

윤석진 : 다성성이나 이어성의 측면에서 보면 페이스북이 해당되는거 같아 왜냐하면 보다 긴 글과 각자 다른 자신의 얼굴을 내걸고 댓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잖아!

 

박화연 : 사실 전 이번 총선을 보면서 아직 SNS가 완전히 공론장으로서 자리잡지는 않았다는 걸 실감했어요. 하지만 눈 깜빡할 사이에 내려가는 타임라인을 보고있자면 SNS가 공중대화의 장으로써의 기능에 주목해야 해야 한다는 건 사실인 듯 하네요!ㅎㅎ

 

손지완 : 나도 이번 총선에서 트위터의 비종결성을 뼈저리게 느꼈어. 그런데 서로 영양가없는 대화만 끝없이 오가는 비종결성이라.. 바흐찐이 의도한 비종결성은 이런게 아니겠지?

 

박화연 : ㅎㅎ영양가가 없더라도 주고 받으니, 대화가 성립되는 것 아니겠어요? 누군가의 중재가 없다면 대화는 끊이질 않잖아요! 심지어 중재도 대화에요!ㅋㅋ

 

최현희 :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든 결론이 있겠지! 라는 생각이었는데, 석진오빠 말대로 트위터도 그렇고 다른 SNS도 그렇고 대화와 논쟁은 끝없이 이어지더라. 비종결성을 실제로 목격한 순간!ㅎㅎ

 

안혜진 : 수업시간에서 들은대로 가장 수다스러운 시대를 살고있나봐요 너무 자기말만하지만 그렇게 떠들 공간이 있어서 좋지않나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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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후기

큐레이션 후기 | The social media and dialogue | Scoop.it

윤석진 : 옛날 바흐찐의 문학분석이란 책을 봤을땐 전혀 이해가 안됐지만 이번 수업을 통해 바흐찐에 대한 간단한 이해는 물론 SNS와 연관하여 볼 수 있는 안목까지 얻은것같아 즐거웠습니다!

 

최현희 : 사실 '미하일 바흐찐'이라는 다소 생소한 인물에 대한 조사였기 때문에 자료 찾는 데 어려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SNS를 통한 대화의 핵심적인 이론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정보사회학 전공 학생으로써 기뻤습니다^ㅇ^

 

박화연 : 부끄럽지만 이번에 공부하기 전까진 미하일 바흐찐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SNS에 적용되는 고전이론이 많다는 것은 익히 들었지만 바흐찐의 이론은 정말 놀랍도록 SNS의 특성과 맞물리더라구요. 정말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재밌네요.ㅎㅎ 전 특히 바흐찐의 이론 중에서도 카니발이 인상깊었어요. SNS에서의 공중대화를 축제로도 볼 수 있다니. 멋져요!ㅋㅋ

 

전하연 : 혼자서 봤을 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글도 조원들과 심층적인 토론을 하며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주제와 관련 있는 자료를 찾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며 이번 과제의 목표에 잘 도달한 것 같아 기뻐요. 무엇보다 과제를 하면서 바흐찐의 이론들이 현재 SNS상에서도 너무나 잘 들어맞는 점이 신기했어요^*^!

 

손지완 : 이제 두번째 큐레이션이지만 할 때마다 저의 얕았던 지식이 조금이나마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특히 바흐찐은 아예 몰랐던 인물이라 이론 또한 많이 생소했는데 이번 기회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sns와 맞물리는 바흐찐의 카니발이론, 그에 기준하는 대화주의는 알아갈수록 신기하고 재밌었습니다!

 

안혜진 : 바흐찐 이론이 처음엔 어려워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됬는데 조원들과 함께 자료읽고 토론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토론준비과정은 힘들었지만, 같이 토론할때는 남의 생각도 듣고 나도 고민하는 과정이 재밌었고 얻는게 많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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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youngmin's comment, May 21, 2012 9:11 AM
수고 많았다. 조원들이 비교적 독립적인 생각도 많이 하고 주제도 잘 소화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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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1 바흐찐 소개

Part.1 바흐찐 소개 | The social media and dialogue | Scoop.it

바흐친 전기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바흐친은 1895년 11월 16일 모스크바 남쪽에 위치한 오렐 이라는 지방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미하일 페도로비치는 그 조상이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직위 없는 귀족계층에 속했다. 당시 모스크바, 오렐, 시베리아에는 바흐친이라는 성을 가진 귀족계층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바흐친의 증조부는 노예 3,000명을 팔아 얻은 수입을 오렐에 육군사관학교를 설립하는 데 기증하였고, 그 학교는 1918년까지 오렐의 바흐친 육국사관학교로 불리웠다. 바흐친의 조부는 시중은행을 세웠으며, 그 은행의 여러 지점에서 바흐친의 아버지는 지점장으로 일했다.

 

바흐친의 가족은 문화적 수준이 높고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특히 친할머니에게서 두드러졌는데 아이들은 그녀를 무척 따랐다고 한다. 바흐친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가능한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하려고 애썼으며 유럽문화와 사상을 접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그밖의 다른 부분에서는 다소 관습적이어서 가족간에 격식을 차렸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전생애에 걸친 인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흐친처럼 인간들 사이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교제에 높은 가치를 두었던 사람이 이와 같은 태도를 지녔다는 것은 이상한 점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그의 이론과 실제 사이에 나타나는 모순과 괴리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기도 하다.

 

미하일에게는 그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형 니콜라이와 세 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에카테리나는 후에 지방학교 선생이 되었고, 마리아는 1898년에 태어났다는 것 정도가 알려져 있으며 나탈리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의 여동생들과 어머니에게는 특별히 두드러진 점이 없었다. 성인이 되면서 바흐친은 그의 가족과 별다른 교류를 갖지 않는다. 1920년대 중반경 그의 어머니는 미샤 에게서 소식을 들을 수가 없고 레닌그라드에 있는 그가 사는 집의 주소조차 모르고 있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유형을 가게 된 바흐친이 가족들이 도시로 이사올 수 있도록 그의 아파트를 가족에게 넘겨준 것을 계기로 다시 접촉을 갖는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1930년대에 죽었고, 그의 어머니와 동생 나탈리아도 2차세계대전 당시 레닌그라드 봉쇄 기간 동안 죽었다. 다른 두 누이 동생의 죽음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 것이 없다.

 

가족 중에서 바흐친에게 가장 영향을 깊이 준 사람은 그의 형 니콜라이였다. 두 형제의 관계는 바흐친의 유년시절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것이었을 뿐 아니라 그의 전생애를 통해서도 가장 발전적인 것이었다. 니콜라이는 미하일이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의미있는 타자(他者) 였다. 타자성이란 개념은 나중에 두 사람의 철학에서 똑같이 기본적인 특징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니콜라이는 미하일과 자신의 관계에 관해 1924년 그가 파리에 있을 때 쓴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 에게 보내는 시에서 밝히고 있는데 이 시에서 니콜라이는 후에 미하일이 존경할 만한 적 에 해당되는 것으로 규정하게 되는 그러한 관점에서 자신과 동생의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우리를 갈라놓은 적대감 을 언급하면서 시작되는 이 시는 동일한 전율이 서로 다른 두 영혼을 스치게 될 것이니 / 그대는 나의 적이자 동생이여―적대감과 수년의 세월을 통해 / 그대는 나의 안부를 듣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라는 확신으로 끝맺는다.

 

이 시에서 적대감 으로 표현된 것은 1918년 이후 두 사람을 갈라놓은 러시아혁명과 내란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니콜라이는 백군에 지원하고 나중에는 러시아를 영원히 떠났으며 미하일은 소련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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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 바흐찐 집안이 대단했구나...노예 3000명을 팔았다니...

 

손지완 : 의외네. 바흐찐이 인간관계에서 격식을 차리다니.. 자신의 이론과는 완전 모순인데 어떻게 그런 이론들을 내놓았을까

 

전하연 : 자신의 가치관과 실제 자신의 모습이 정말 모순적이네요.

 

최현희 : 바흐찐이 자랐던 비교적 자유로웠던 분위기 덕분에 우리가 현재 바흐찐의 이론을 볼 수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격식 있고 자유로웠던 분위기가 타인의 존재감을 인식시키고, 또 차이를 인정하는 가치관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전하연 : 맞아~현희얌, 그런 문화적 수준이 높고 자유로웠던 분위기 속에서 본인의 이론을 어느정도 생각해냈을 것이고 오히려 그 밖의 다른 부분들에서, 가족 간이나 인간관계에서는 격식을 차려야 하는 삶을 살면서 더욱 더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느끼고 이론을 완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혜진 : 정말 대화에 대한 이론을 펼친 사람이 가족과 교류가 별로 없었다는 점이 신기하네요. 하연이 말대로 대화의 중요성을 더 절실히 느껴서 그런 이론이 나왔을 꺼 같아요ㅎㅎ

 

박화연 : 맞아맞아, 타자성이 가족에 의해 기반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마지막에 형과의 관게를 '적대감'이라고 표현 한 것도 놀라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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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미디어의 변화와 오늘날 공중대화

Part. 3 미디어의 변화와 오늘날 공중대화 | The social media and dialogue | Scoop.it

변화된 미디어 환경, 그 변화가 지니는 의미 (동영상)

우리는 점점 더 미디어가 전세계적이고 또한 사회적이고, 어디에나 존재하고, 저렴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부분의 조직들이 메시지를 외부 세계에, 분산된 청중들을 향해 전달하고자 할 때 이 변화에 익히 알고 있습니다. 청중들은 말을 걸어 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약간 기묘한 일이죠. 하지만 어느정도 지나면 다들 그렇듯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복판에서 겪고 있는 진짜 엄청난 변화는 따로 있습니다. 진짜 엄청난 변화는 바로 여기에 있죠. 그들이 더 이상 서로로부터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한 때 소비자였던 이들이 이제는 생산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청중들이 서로 직접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프로보다는 아마추어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죠.네트워크의 크기, 네트워크의 복잡성은 사실 참여자 숫자의 제곱입니다. 즉 네트워크는 커지면 엄청나게 커집니다. 최근 10여년 정도만 하더라도 대중이 소비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미디어는 전문가들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그 시대는 이제 끝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이제는 이 초록색 선들이 무료 콘텐츠의 소스가 되어줍니다. 미 디어, 우리가 과거에 알고 있는 미디어 지형은 무척 익숙했었고, 그 개념에 있어서 직업적 생산자들이 메시지를 아마추어들에게 전달한다는 발상을 쉽게 다룰 수 있었던 그 미디어는 이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디어가 전지구적이고, 사회적이고, 어디에나 있고, 저렴한 세계에서, 한 때의 청중들이 이제는 점점 더 온전한 참여자가 되어가는 미디어의 세계에서, 그런 세계에서 미디어는 점점 개개인이 소비하도록 고안된단일한 메시지를 만드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앞으로 미디어는 점점 더 집단을 소집하고 지원하기 위한 환경을 만드는 방식에 관한 것이 됩니다.그리고 우리가 직면하게 될 선택은, 그러니까 세계 어디라도 누가 들어줬으면 하는 메시지를 가진 이라면 누구나 내려야할 선택은, 현재 이런 변화가 우리가 활동하고 싶어하는 미디어 환경인지 아닌지가 아닙니다. 이 미디어 환경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모두들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이 미디어를 어떻게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가? 늘 해오던 방식을 바꿔야함에도 불구하고." 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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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 '인터넷은 생겨날때부터 집단과 사적 대화를 모두를 지원하는 역사상 최초의 매체'
'인터넷은 모든 다른 미디어를 실어나르는 수단이 된다는 것'
'최근 10여년 정도만 하더라도 대중이 소비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미디어는 전문가들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그 시대는 이제 끝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고 좋은 자료인거같아!!

 

최현희 : 제가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한 때는 청중에 속했던 이들이 이제는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도 될 수 있다는 것" 이라는 Dan Gilmore의 표현이에요. 늘 TV와 라디오를 통해서 듣기만 했던 수동적인 존재였던 시절을 벗어나서, 미디어 환경 변화 덕분에 능동적인 정보 생산자가 될 수 있었던 거잖아요? '참여'를 통해서 우리를 정보생산의 주체자로 만든 현재의 미디어 변화, 완전 조으다!

 

안혜진 : 미디어의 변화 두 번째에 보면 '모든 미디어가 디지털화되면서 인터넷은 모든 다른 미디어를 실어나르는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라고 하는데, 교수님이 했던 맥클루언 수업이 생각나네요. 교수님은 요즈음 모든게 인터넷과 연결되어있으니 지금은 쿨미디어시대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또 한번 배웠네요.ㅎㅎㅎ 과거엔 항상 보고 듣기만하다가, 지금은 인터넷에서 다른사람들과 같이 대화하면서 생각을 넓히고 자신의 의견도 어필할 수 있죠. 이렇게 생각해보니까 큰 변화가 이루어졌네요.

 

박화연 : 우리가 이번 주제에서 생각해봐야하는 '공중대화'의 개념과도 연관지어 볼 수 있는 자료네요. 미디어 지형이 변한 덕분에 온라인, SNS를 통한 공중대화가 가능해졌으니까요!ㅎㅎ 바흐찐의 대화주의가 현실속에서 나타나게 될 수 있던 배경이 되기도 하겠어요.

 

전하연 : 혜진이의 말대로, '과거엔 항상 보고 듣기만 하다가'->전통적인 미디어, 예를 들어 신문(정론지)을 보면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기사가 있었다면 이에 사람들은 이런 객관주의적 저널리즘을 분석하고 그 표상을 통해 보여주는 공론장의 기능을 수행했고, 심지어 그 공론장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에 반해 이제는 소셜미디어-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그 공론장에 참여하기도 훨씬 쉬워졌고 무엇보다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제기하는 다양한 의견과 정보는 공유되고 실어날라지면서 큰 변화가 이루어졌어요!

 

안혜진 : 하연, 정말 스마트폰보급으로 언제어디서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미디어의 가장 큰 변화를 이끌게 한거같아.
"우리는 점점 더 미디어가 전세계적이고 또한 사회적이고, 어디에나 존재하고, 저렴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 말은 미디어의 변화를 한마디로 잘 정리해주어서 좋네요. 저렴해졌다는 게 와닿아요. 과거엔 돈있고 지식인만 정보를 만들고 줬는, 지금은 그 청중들이 함께 참여하잖아요. 우리가 이 좋은 환경에서 미디어를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할지를 잘 생각해봐야 할거 같아요.

 

손지완 :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든 대화의 참여가 가능한 건 좋은데 가끔은 이런 대화에 너무 얽매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어. 대화를 무조건 계속 해야할 것 같고.. 잠깐만 참여 안해도 수많은 정보가 오가기때문에 뭔가 나만 도태되는 것 같고...

 

윤석진 : 조금 주제에 어긋난 말일지 모르겠지만 커피하우스 이론이 생각나! 여러 커피하우스에서 화두였던 주제들을 신문기사화하고 다시 그 신문을 커피하우스에서 읽고 반복되었던 것과 비슷하게 느껴져

 

전하연 :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고 진화하면서 과거의 커피하우스보다 훨씬 더 활발한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고 생각해요!

 

최현희 :‎손지완 맞아요ㅠㅠ 대화에 너무 얽매일 때가 많았어요. 조금만 늦으면 대화에 낄 수 조차 없어지게 멀어지기때문이에요. 현재도 소통의 장으로써 SNS가 큰 역할을 하고있지만, 아직은 한계점이 많아요. 특히 트위터와 같이 한 가지 주제로 소통하기 어려운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렇죠. 따라서 한계점도 보완하면서 완벽한 토론장, 공론장으로써의 SNS활동을 기대해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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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1-2 미하일 바흐찐의 이론으로 분석한 오늘날 공중대화 : 타자성

Part. 4-1-2 미하일 바흐찐의 이론으로 분석한 오늘날 공중대화 : 타자성 | The social media and dialogue | Scoop.it

소셜미디어시대,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미디어의 기본

 

ㅡSNS가 없었다면 아마 시·공간적인 제약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SNS는 획기적인 삶의 도구가 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SNS라는 그물은 앞으로 더욱 촘촘해지고 다양해질 것입니다.

 

ㅡSNS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나눔’이 아닐까요? 나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나누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이 봐주고, 그로 인해 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삶에 작은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입니다.

 

ㅡ타인과의 소통과 아울러 누군가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SNS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그러나 누구에게나 SNS가 선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뜻 없이 내뱉은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상처와 아픔이 될 수도 있는 것. 그래서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버 공간이라 할지라도 내가 쓰는 글은 내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ㅡSNS를 하면 할수록 말 한마디의 위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배움의 자세와 경청의 시간을 더욱 많이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죠.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서로의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지 않고 틀렸다고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참 아픕니다. 제가 꿈꾸는 SNS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배우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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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연 : SNS가 타인과의 소통에 기반한 미디어라는 특성 자체가 타자성에 근원한다고 봐. 이 자료는 마흐찐의 대화론이나 카니발이론에선 빠질 수 없는 타자성과 SNS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ㅎㅎ

 

윤석진 : 의사표현 이나 욕구 욕망을 나타내는건 타자를 위한다기보다는 나를 위하는 것이고, 소통은 타자를 생각하여 교류하는것 같아

 

최현희 :‎'나를 창시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하다는 글을 봤던 적이 있어요. 타자가 없다면 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겠죠.

 

윤석진 : 타자가 없는 SNS라면...댓글이 없는 포스팅이라구 할 수 있을까? 뭔가 슬푸다...

 

전하연 : sns를 통해 제한된 오프라인보다 훨씬 더 다양한 타자와 소통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sns는 타자성을 전제로 더욱 더 활발해 진 것이 아닐까?

 

최현희 :‎윤석진 타자의 반응이 없는 포스팅은 뭔가 초라해보였던 적이 많았어요ㅠ 나의 존재감을 살려주는 타자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손지완 : sns는 타인과 소통하려는게 목적이라.. 타자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해봤네. 존재 이유자체가 없을거같다

 

전하연 : 맞아요, 내가 말하는 대상이자 내게 반응해주는 타자가 있어야 더욱 더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활발한 공중대화가 펼쳐지니까요

 

안혜진 : 나의 존재감을 살려주는 타자라는 현희말에 공감이당. 근데 그런거에 집착하게 되면서 삶이 조금은 피곤해 진듯해ㅜㅜ

 

안혜진 : 또 미디어속 타자에는 계속 관심을 쏟지만 현실 속에은 무관심해 진것도 느껴. 앞에 사람이 있어도 스마트폰만 보구 있고 그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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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3 미하일 바흐찐의 이론으로 분석한 오늘날 공중대화 : 카니발

Part. 4-3 미하일 바흐찐의 이론으로 분석한 오늘날 공중대화 : 카니발 | The social media and dialogue | Scoop.it

풍자 시사에 날개를 달다

 

미하엘 바흐친은 풍자가 기존의 서사구조로부터 일탈하고 의도적으로 이를 위반함으로써 권력구조를 문란하게 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을 통해 웃음은 단순히 기성 문화를 조롱하는데 그치지 않고 권력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저항과 전복의 속성까지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바흐친은 기존 질서로부터 해방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이 가상적 공간을 ‘카니발’이라 명명한 다음 카니발 기간에는 공식적인 권위가 무력화되고 동시에 교란된다고 정의했다. 바흐친은 이 개념을 통해 풍자의 저항적인 성격을 긍정하고 풍자가 기존의 권력을 전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카니발 개념은 「나꼼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꼼수」는 ‘풍자’라는 외피를 두른 채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 정치권력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카니발’의 공간이다. 대중은 이 방송을 듣는 동안 기존의 정치담론을 벗어나 새로운 비평을 접하고 여기서 권력의 해체를 엿보게 된다. 방송 초기 ‘시사풍자토크쇼’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음모론을 제기했던 「나꼼수」는 이제 단순한 흥미 위주의 방송을 넘어서서 정치권력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해체하는 대안언론매체로서의 가능성까지 타진하고 있다.

 

러시아의 문예비평가 루나차르스키는 카니발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카니발 속에서 낮은 계층이 지배계급의 권력을 해체하기는 하지만 이는 결국 지배계급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일시적으로 울분을 터뜨리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혜경 교수(미학과)는 “미하일 바흐친이 설정한 상상적 공간 내에서 사회적 비판을 해소함으로써 카니발이 넓은 의미에서는 더 큰 폭발을 막는 안전핀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단지 바흐친이 카니발이 정점에 이른 시기라 규정했던 16세기에만 적용되는 비판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도 이같이 정치적 무기력이 재생산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치에 관한 담론들이 웃음으로 ‘소비’됨으로써 보다 생산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그라질 수 있는 것이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박권일씨의 비평도 이 지점에 맞닿아있다. 박권일씨는 시사주간지 「시사IN」에 게재한 칼럼에서 현재 불고 있는 풍자열풍은 “축제 중에서도 힘 빠진 짐승을 칼질하는 쾌락을 제공하는 사육제”라고 언급하며 생산적인 결과 없이 소비되는 정치 담론을 비판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불고 있는 풍자 열풍은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발전적인 비판을 안고 있다면 대중들의 사회참여를 독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꼼수」의 출연진 김어준씨가 시작한 ‘닥치고 투표’ 운동과 포스터는 서울 시장 선거 때 SNS에서 확산돼 투표율을 높이는데 일조했다. 시사에 대한 거리감이 줄어들자 대중들이 주체가 돼 정치 담론들을 분석하고 풍자한 시사콘텐츠들을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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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 아이튠즈 팟캐스트를 통해 엄청난 청자를 끌어모은 나꼼수 얘기구나 카니발 이론이 쉽게 이해되는거같아 좋은걸

 

최현희 : 나도 석진오빠처럼 지위나 성별, 직업 등과 관계 없이 지배계급층의 행동을 풍자하는 모습이 카니발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었어. 하지만 카니발 이론의 한계에 대해서는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ㅠ 지배계급의 울타리 내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울분이라니ㅠ

 

윤석진 : 카니발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공간이다보니 결국 반 기득권적 문화가 자리잡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는것 같아

 

전하연 : 옛날, 카니발 기간에는 정권에 반하는 의견을 내놓아도 축제가 끝나면 사라지는...일시적 현상이었지만, 그 한 순간 웃음으로 소비되고 마는 한계를 딛고 일어서고 현재 미디어 환경의 힘을 입어 더 생산적인 힘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ㅠ.ㅠ

 

손지완 : 정말 기존질서를 벗어나 정치권력을 자유롭게 풍자하는 나꼼수는 웃음과 축제의 카니발과 흡사하네. 이렇게 카니발 이론을 업은 sns의 힘이 좀 더 발휘되었으면 좋겠다.

 

박화연 : 나꼼수에서 볼 수 있듯이, SNS라는 공간에서 기득권층, 현실을 비평하면서 사용자 사이에 퍼져나는 카니발 적 특성을 볼 수 있는 자료인 듯 해. 하연이 말처럼 고ㅏ거에는 일시적이었겠지만, 언제든 접할 수 있는 SNS가 접목되면서 이제는 항상성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싶네!ㅎㅎ

 

안혜진 :‎'정치에 관한 담론들이 웃음으로 ‘소비’됨으로써 보다 생산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그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보니 sns를 주의해야겠네요. 담론을 넘어서 참여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겠어요!

 

윤석진 : 나꼼수같은 카니발이 있으면 오히려 폭동이나 큰 사건이 덜 일어난다는 이론을 봤는데 반현실적인 카니발 덕분에 현실에서의 스트레스를 조금은 날릴 수 있어서가 아닐까

 

박화연 : 맞아 혜진아.. 근데 아직까지 현실은 그렇지 않은가봐. 이번 총선 때 역시 SNS에서의 공론장역할이나 현실의 결과로 이어지는 데에 있어선 좀 부족했던 것 같아. 석진오빠 말대로 아직까지는 스트레스를 풀어주거나 하고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것 정도? 하지만 자꾸만 커져가는 존재감이 앞으로는 점점 그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려워 질 것 같아.

 

전하연 : 그런 카니발 이론이 sns상에서도 딱 들어맞게 나타나는 것이 신기해요^.^ 앞으로는 일시적 카니발 현상이 아닌 혜진이 말대로 담론을 넘어서 참여하는 행동으로 이어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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